리치웨이 바이오매트는
명상을 할 때 보다 깊게 몰두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뇌과학이 발견한 불교의 핵심 메시지
엊그제 우연히 과학잡지 「익스플러(EXPLORE)」에 실린, 명상 수행과 뇌과학 영역을 주도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인 리처드 데이빗슨(Richard Davidson)과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다. 이전에 ‘뇌과학과 불교’를 소개하면서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우선 명상수행과 뇌과학의 연구에서 밝혀진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마음훈련을 통해서 뇌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변화한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에서는 전문용어로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이는 인간의 뇌가 어린 시기에 일단 형성되고 나면 더 이상 변화하지 않고 고정된다는 전통적 주장을 뒤엎는, 그야말로 뇌과학의 역사에 전환점을 가져오는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 뇌에 관한 기존의 이해를 깨뜨리는 두 번째로 놀라운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뇌의 극히 일부분만을 사용할 뿐, 대부분의 뇌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데이빗슨의 연구결과 우리는 항상 우리의 모든 뇌세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똑똑한 사람이나 둔한 사람이나 다 똑같이 뇌의 전 영역을 사용한다는 말이다. 이는 똑똑한 사람이 더 많은 뇌세포를 사용하고 둔한 사람이 뇌의 세포를 더 적게 사용할 것이라는 전통적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다.
뇌기능과 관련해서는 누가 뇌를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의 문제지 누가 뇌의 기능이나 뇌세포를 더 많이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마음훈련(뇌훈련)이 잘 된 사람이 뇌를 더 적게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뇌를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흥미있는 사실은 진화의 개념이다.
다윈이 말하는 진화는 몇 백만년이라고 하는 엄청나게 긴 지질적 시간을 거쳐서, 그리고 자연적 선택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뇌에 어떤 특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명상수행을 통한 뇌의 변화는 아주 짧은 기간에 일어날 수 있으며 교육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데이빗슨의 연구는 두 달 동안 일주일에 3시간씩 명상훈련과 마지막 날 하루 종일 묵언명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뇌가 다르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런데 ‘명상수행과 뇌과학이 밝혀낸 위의 세 가지 사실들은 구체적으로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것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우리는 그러한 발견을 어떻게 우리 자신과 연결지어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현실적·구체적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명상의 효과와 관련해서 뇌과학이 발견한 위의 세 가지 사실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불교의 핵심 메시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첫째, 뇌의 기능은 타고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환경, 부모, 조건에서 태어나고 자랐던지 관계없이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부모나 사회, 환경을 원망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책임지고 바꾸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 번째 발견은 머리가 좋거나 나쁘다는 의미가 얼마나 집중을 잘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집중을 잘하면 그만큼 뇌를 적게 사용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일을 더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다. 그러므로 명상수행을 통한 집중력은 그만큼 삶의 질과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직접적 이익을 준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 변화는 언제든지 마음을 먹고 실천하는 순간 곧장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깨달음은 순간순간 일어날 수 있고 그렇게 일상에서 일어나는 깨달음이라고 해서 시시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큰 깨달음이나 작은 깨달음이나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삶과 죽음의 일대사를 해결하기 위한 굳은 결심과 용맹정진은 좋다.
그런데 실상은 부처님께서 이미 그 일대사의 과정을 몸소 겪으시고 깨달아서 무수한 예시와 함께 순차적으로 잘 설명해 놓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새삼스럽게 부처님이 수행하셨던 고행의 과정을 거치면서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일상에서 실천만 하면 된다. 그래서 많은 조사스님들이 일상이 도(道)고, 평상심이 도며,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定)이 모두 도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재미있게도 데이빗슨은 “만일 깨달은 사람이 당신 앞에 있다면 당신의 정신수준도 따라서 고양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깨달은 자가 무슨 비밀스러운 에너지로 전수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 사람의 태도, 즉 말하는 내용과 방식, 몸짓 등은 말할 것도 없이 상대방의 마음과 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보통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도 경험하듯이 의사가 환자를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보다 편하게 대하면, 환자의 병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데이빗슨은 달라이 라마 앞에서 자신이 아주 깊은 수준의 편안과 안정된 마음을 체험했다고 한다. 불교의 핵심이 연기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연기법을 깨닫기 위해서 부처님이 하셨던 고행이나 수행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부처님이 발견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냥 그 연기법을 실천만 하면 된다. 연기법은 우리는 서로 의존적인 존재인지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가르침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곧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뇌에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몸에 영향을 미친다. 한마디로 우리가 하는 행동은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불교는 서로의 건강을 위하고 뇌에 선한 마음의 종자를 심기 위해서, 제일 먼저 열 가지 선한 행동(十善行)을 가르쳐왔는지도 모른다.
십선행은 마음수행의 시작이면서 깨달음의 완성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억지같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대승불교가 연기법을 깨달은 연각승보다는 십선행을 실천하는 보살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연기나 공(空), 무상(無常)은 깨달아야만 하는 것들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실천의 과정이 바로 깨달음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어떻게 실천하냐고, 알아야 실천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십선행, 사무량심(四無量心), 사섭법(四攝法), 육바라밀(六波羅蜜)이 바로 그것들이다. 서광 스님(미국 보스톤 서운사 주지)
NOTE:
명상은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높여주는데 많은 기여를 한다. 어떠한 질병이라도 의학적 치료가 결정적인 역활을 하지만 완전한 회복과 치유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도 동시에 치유를 하여야 한다. 만약에 마음 치유를 하지 않는다면 회복 속도도 더뎌지고 오히려 증상이 더 악화되는 경우도 있기에 환자가 투병중에는 명상을 병행한다면 보다 나은 효과를 얻지 않을까 생각 한다.
두려움과 분노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자괴감이 있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므로 모든 환자는 의학적 치료와 더불어 자신의 마음 치유도 동시에 시도하여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無我 그 것은 나라는 존재의 유무공존의 상태이다. 굳이 종교적인 이해를 바라지 않아도 참된 我는 자신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을 느끼지 못하는 것 이다. 我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요즈음의 세상에서 내가 없다는 사실은 왠지 모르게 어머니의 가슴처럼 포근함을 느껴본다
힐링어드바이저ㅣ김동우
현대의학 자연의학 그리고 의용공학의 세계
http://blog.daum.net/inbio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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